모든 인간에게는 자기에게 합당한 존재의 자리가 있고 이름의 무게가 있다. 존재의 무게는 각각 다르며 우리는 자신의 존재 무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무 가볍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 않도록 자신의 무게감을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무게를 가져야 하고 목사는 목사로서 무게를 가져야 한다. 그 무게를 가볍게 취급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 이름값이 있고 이름값에 맞도록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때로 성서 속 인물의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데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울을 바울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그중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 의미를 묵상하다 문득 그 이름값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름값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의 이스라엘은 이름이 갖는 무게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만약 나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면 나는 그 이름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내 이름 뒤에 목사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어있음도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으니 말이다. 목사라는 이름은 얼마나 무거운가? 그래서 불편하고 때로는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의 또 다른 이름이기에 이름값을 하고 살아야 한다. 목사라면 목사라는 이름값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사라는 이름이 너무 천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목사들이 잘못해서다. 목사가 얼마나 무거운 이름인지를 알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하찮게 여기며 살아왔다. 이름값을 못하면 그 이름값은 똥값이 된다. 그러므로 이름이 갖는 의미는 무섭다.
목사라는 이름값이 똥값이 되고 있다. 뉴스 속 주인공들이 목사가 되었다. 백번 양보하고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선을 넘었다. 이제는 정리하고 가야 한다. 단절하지 않으면 교회가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