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이를 먹고 할아버지가 되어 어디를 가든 노인 대접을 받는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어르신 또는 할아버지라 부른다. 나는 보통의 눈으로 볼 때 이미 무척 늙어 보이는가 보다. 물론 나 자신은 여전히 스스로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나 자신이 노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살아온 시간을 더듬어 보면 너무도 빨리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정말 시간이 쏜 화살처럼 빠르다. 1987년 목사가 되어 그해 군목으로 입대했고 같은 해에 결혼식을 하였다. 큰아이를 낳은 것이 1988년이었으니 올해로 그 아이의 나이가 서른일곱이다. 그 아이도 장가를 갔고 큰 손자는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 손녀딸은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목사가 된 지 38년, 나섬의 목회를 한 지도 어언 33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했다. 시력을 잃어 장애인이 되었고 이제는 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생겨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몇 년이나 사역을 더 할 수 있을지를 헤아리는 버릇이 생겼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따져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쨌든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짧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인생은 짧다. 그럼에도 짧은 인생을 살며 욕심을 내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죄를 짓고 그것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이다.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꽃이 백일 동안 붉게 피어 있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도 있다. ‘권력이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백일을 넘지 못하고 아무리 강력한 권력도 10년을 넘지 못한다. 그것이 역사의 진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역사의 진리를 외면하고 살아간다. 영원한 권력자가 되고 싶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죽어서도 영광된 자리를 지키려고 자식들에게 교회를 세습한다. 그래서 세상은 혼란스럽고 교회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욕망은 세상이나 교회나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그 권력을 죽는 날까지 아니 영원히 붙잡으려 하니 가장 나약하고 못난 것이 인간이다.
교회에서도 거리에서도 목사들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있다. 지금은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권력자가 되어 큰소리를 치지만 곧 역사 앞에 망할 짓을 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했다는 사실에 통탄할 날이 올 것이다.
속히 어리석은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결국 우리가 살 곳은 여기가 아니고 저기 하나님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권력은 짧다. 그러나 역사는 길다. 극단의 욕망에 사로잡혀 세속적 권력을 좇는 교회와 목회자가 마주할 미래는 언제나 비극이다. 그것이 역사가 가르쳐 주는 진리이며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