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놀던 곳이 바로 여기 아차산이었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소풍을 가던 곳이 아차산 영화사와 대성암이 있는 등산로 인근의 산자락이었다. 지금 그곳은 잘 정돈된 등산로와 둘레길이 있지만 우리가 소풍을 가던 때에는 그저 적막하고 나무가 가득한 산 자체였다. 물론 계곡에는 물이 흘렀고 유일한 건물이라야 영화사라는 절이 전부였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학교 뒷산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소풍을 갔다. 매번 가던 곳이었음에도 소풍을 가는 날이면 밤에 잠을 자지 못했고 소풍 날 혹시라도 비가 내리면 울상을 짓곤 했다. 어머니는 그날만큼은 김밥을 싸주셨는데 그 김밥은 요즘 먹는 김밥과 비교하여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그 김밥은 잊을 수 없는 내 기억 속의 어머니 냄새다.
그저 소풍이라고 하루 산에, 그것도 바로 뒷산에 올라 김밥 정도 먹고 돌아가는 일이건만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보물찾기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고학년이 되면서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하긴 그 시절에는 보물찾기라는 놀이조차 사치스러울 만큼 참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보물을 찾으면 선물을 주어야 하는데 무슨 선물이 있었겠는가? 보물찾기는 작은 메모장 같은 것에 보물의 이름이나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고 그것을 찾은 사람은 선물을 받는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 보물을 숨기는 사람들은 보통 선생님들이었고 선생님들은 보물을 숨기는 재주가 남달랐던지 아주 기묘한 곳에 감추어 놓으셨다. 그럼에도 보물을 잘 찾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매번 보물을 찾지 못하여 아무런 선물도 받지 못한 기억이 있다.
나중에 보니 보물은 나무의 가지 사이나 바위 밑 혹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숨겨졌고 그것을 모르는 나는 일상의 길이나 사람들이 자주 가는 그런 곳에서 보물을 찾았으니 내게 보물단지는 요원한 것이었다. 지금 다시 보물찾기 놀이를 하면 잘 찾을 것 같은데 지금 그런 유치한 놀이는 사라졌을 것이다.
인생은 보물찾기다. 누가 보물을 잘 찾는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운명이 결정된다. 보물이 숨겨진 곳을 잘 찾아내면 그는 상을 받고, 찾지 못하면 김밥이나 먹고 돌아오는 소풍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보물을 곳곳에 숨겨놓으시고 우리더러 찾아보라 하신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이나 기발한 장소에 보물이 있지만 보통의 우리는 그 장소를 알지 못하고 허둥대기 일쑤다. 과연 하나님은 어디에 보물을 숨겨놓으셨을까? 하나님이 숨겨놓으셨을 것 같은 보물의 장소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가 사는 곳곳이 모두 보물 창고다. 사회경제, 정치, 문화 그리고 종교와 교육, 만나는 모든 삶 속에 보물이 있다. 그것을 돈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나처럼 선교라 말하는 이도 있다. 돈이고 선교고 모두 보물이다. 우리의 삶은 보물을 찾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네 장막 터를 넓히라'는 말씀으로 새해를 시작하며 눈을 감고 생각한다. 아니 눈은 이미 감겨 있으니 마음을 모아 묵상을 한다. 그러다 문득 그곳에 가면 보물이 있을 것 같은 곳들이 떠오른다.
올해는 소풍날 보물찾기를 하던 어릴 적 기억으로 돌아가 보물을 찾아 나선다. 기필코 보물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나는 마침내 보물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