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나는 아비로서 아들에게 바라는 삶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아들에게 “나는 네가 넥타이를 매지 않는 직업을 갖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네 삶이 침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라.”라고 말해 주었다. 아비라는 자가 아들에게 바라는 삶이 이렇다면 오늘날 보통의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리라. 그런데 사실 그런 바램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이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실제로 오늘날 모든 이들이 바라는 삶이 아닐까? 자유롭게 살면서도 밥을 먹고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들에게 했던 오래전 말을 잊고 있었다. 나는 보통의 아버지처럼 아들이 세상에서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소유한 소위 성공적인 사람의 전형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들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다시 인생을 생각해 보았다. 과연 성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젊었을 때부터 자유로운 삶을 원했다. 적어도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홀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할까? 자유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에도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살라 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는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나그네와 더불어 넥타이를 매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목사가 되었다. 자유로운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바람대로 그렇게 살게 된 것이다.
내 아들은 변호사다. 제법 공부를 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과 꿈을 가진 사람이었으므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든 것이다. 변호사는 직업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 변호사 업무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부를 때에 그냥 변호사라고 불러도 되는 몇 안 되는 좋은 직업이다. 나는 아들이 변호사가 된 것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사는 조건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변호사가 되기를 바란다. 돈보다 자유가 더 좋단다. 굳이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지 말기를 바란다. 돈도 벌고 자유로우면 좋겠지만 돈을 많이 벌려면 자유는 포기해야 한다. 돈은 적당히 벌고 그보다는 자유로운 변호사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여라.”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목사이든 변호사든 형식에 매몰된 삶이 아니라 내용이 자유롭고 행복하면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내 아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돈도 벌고 자유도 얻는 삶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런 삶은 쉽지 않으니 하나만 소유하여야 한다면 자유를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유로운 변호사 아들이 되길 바란다.
어렵고 소외당하는 이들의 이웃으로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열린 변호사로 살기를 바란다. 특별히 나그네 된 이들을 도와 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 더 헌신하길 바란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삶이라며 아파하는 이들의 친구로 살려면 변호사라는 직업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 돈 버는 일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벗이 되는 행복한 변호사로 살면 그것으로 이미 자유인이니 그 자체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다. 아들이 내 말대로 그렇게 자유로운 행복한 변호사로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