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
- 우간다에서 온 에디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어떠한 격려나, 사랑의 어떠한 위로나, 성령의 어떠한 교제나, 어떠한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1-11
우리 선교회에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온 에디 형제가 있다. 찬양을 어찌나 잘 하는지 굵은 바리톤의 찬양은 은혜 그 자체다. 안산에서 일을 하는 에디가 얼마 전부터 일감이 없다고 했다. 감기도 심하게 들었는지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일감도 없고 몸은 아프고 날씨는 겨울로 접어드는데 에디가 걱정이다. 내가 에디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초기 우리 선교회 당시에 만났던 한 아프리카 형제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아프리카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모두가 다 똑같아 보이는 것이 이름과 얼굴을 연결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시력이 나빠서이기도 하겠지만, 눈이 좋았던 시절에도 사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비슷비슷하여 거의 구별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온 한 형제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혹시 병원에 데려다 줄 수 없느냐면서 너무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몸이 몹시 아프다며 지금 자기는 죽어가고 있다는 말도 했었다.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그 아프리카 형제의 얼굴은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나는 지금도 그 고통스러워하는 표정과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병원까지 가는 차 안에서도 그 형제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었던 모양이다. 차 뒷자리에 누워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는 그 형제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랄 만큼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였다. 아프리카에서 온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셨다.
에디 형제를 만나면서 나는 다시 그때의 아프리카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감기 몸살로 힘들어하는 에디를 보는 순간 오래전 만났던 그 아프리카 나그네 예수가 생각난 것이다.
이제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길 기다리는 절기라는데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고는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솔직히 예수가 오시면 껄끄러운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닌가? 뿐만 아니라 예수님 오시면 곤란한 교회도 많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나 저제나 주님 오신다고 기다리긴 하는데 오실 주님의 모습이 분명하지 않아 혼란스러운 헛소리가 무성한 세대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하였는데, 그 사람들 중에서도 낮고 연약한 종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하였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오실 예수를 높고 능력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찾으려 한다.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옥에 갇히고, 나그네 된 작은 소자(마25:40)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말씀하신 주님을 믿지 못하고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좋고 높은 곳에서 예수를 찾는다. 거기엔 예수가 오시지 않는 줄 알면서도 우리는 자꾸 그쪽을 바라본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온 에디 형제가 예수다. 그는 우리에게 오실 예수의 형상을 갖고 있는 분명 예수다. 처음에 이 땅에 오신 예수도 그렇게 오셨다. 아무도 모르게,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모습으로 이 역사의 현장에 들어오셨다. 헤롯의 정보원도 예수의 오심을 도청하거나 알아낼 수 없었다. 2000년 전 예수는 나그네가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도 역시 나그네가 되어 오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나그네가 예수며, 그 나그네들 속에서 예수를 찾아야 한다.
교회는 나그네에게 인색하고 때론 생색내기 구제에 급급하다. 예수가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실 텐데도 그렇게 안목이 없다. 예수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했다. 종의 모습으로 나약한 장애인의 모습으로 오신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