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는 무엇을 세습할까?>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17-21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버크셔 헤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회장이다. 그는 1965년 이 회사를 설립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방직회사에서 시작하여 살아있는 투자의 전설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돈 버는 일에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 회장 다음으로 돈을 많이 번 세계적인 부호다. 그런 워렌 버핏이 빌 게이츠 재단에 자그마치 37조원이라는 어머어마한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돈을 버는 것에도 전설이었지만 돈을 쓰는 데에서도 그는 신화를 남겼다.
그의 재산 가운데 85%를 기부했다고 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버핏의 사례에서는 예외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광화문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분이 마침 교회엘 다니는 집사님이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그 택시 기사 집사님 하시는 말씀이 교회가 큰일이란다. 왜 그리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더니 그 기사 집사님의 답변이 이렇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한테, 교회 세습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부목사님이 자기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네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젊은 목사님까지도 그리 생각하시느냐고 되물었지요. 그랬더니 그 부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사업장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뭐가 어떤가요?’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제가 마음으로 충격을 받았어요”
교회가 사업장이란다. 사업하다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뭐 잘못이냐는 것이다. 사업장이 되어버린 교회다. 어쩌면 그 부목사 답변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사업장이 되어버린 교회이니 말이다.
이제 세습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하면 다 세습하는 세대가 되었으니 그것 가지고 더 논쟁하는 것도 시간낭비처럼 보인다. 이젠 세습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세습의 전통은 우리 사회와 교회의 뿌리 깊은 전통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 재벌 세습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그런 회사 중 하나다. 편법세습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세금도 덜 내고, 안정적으로 기업을 세습하자니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붉어지자 그 회사들이 사회에 거금을 기부하겠다고 나왔다. 그 회사들이야 정말 자기들 사업장 세습한다는 마음으로 그리하였겠지만 그래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아 논란이 일었다. 기업도 그런 편법 세습으로 도마에 오를 판인데, 교회는 무풍지대다. 정말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 우리 사회에 또 어디에 있었던가?
독재권력은 존재했어도 그 권력이 세습되는 것에는 양보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다. 후계자라는 말이 한때 인구에 회자된 적은 있었지만 그 후계자가 성공한 예는 역사에 없었다. 절대권력도 세습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절대부의 세습에도 이렇게 어려움이 있는데... 절대 종교 권력과 부는 여지없이 세습의 굴레를 통과하고 만다. 얼마나 힘들이 세기에. 그런 면에서 우리 한국 교인들은 바보가 아니면 도통한 도사들이다. 둘 중의 하나가 아니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돈과 그 돈의 위력을 후손들에게 물려준다. 기껏해야 천박한 자본의 힘 정도만을 물려줄 뿐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들은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유산임에도 우리는 아직 그런 유아적이고 물질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돈이 많다는 재벌이나 교회가 크다는 목회자나 모두가 다 마찬가지다. 재벌이나 목사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워렌 버핏이 위대한 것은 그의 노마드적 철학 때문이다. 자기 것에 대한 연민과 집착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집착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노마드적 인간이기에 그가 크게 보이는 것이다. 그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한 철학이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이다.
종교는 그런 노마드적 삶을 가르친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는 그런 집착으로부터의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진리라고 가르친다. 무소유든 무집착이든 모두가 그런 세상적인 연민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노마드적 삶을 사는 이들은 결코 성을 물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노마드의 정신과 철학을 물려준다. 권력과 부를 물려주는 노마드는 망한다. 그들은 결코 진정한 노마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노마드의 철학을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며 그 철학을 세습한다. 칭키스칸의 예언처럼...
돈과 권력을 세습하는 자들은 망한다. 그러나 그 철학과 정신을 남겨주는 자의 자손은 흥한다. 이것은 역사가 가르쳐준 진리다.
내 아들에게 노마드적 삶을 가르쳐 주고 싶다. 돈보다 더 귀중한 것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생명력이 짧은 권력과 물질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유산으로 세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