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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새로운 선교의 대안-다문화 이주자 선교


땅끝에서 온 사람들, 땅끝으로 가는 사람들

노마드의 시대가 도래했다. 13세기 몽골의 칭키스칸이 이룩한 '노마드의 제국' 이후 이렇게 빠르게 노마드의 시대가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족과 국경의 개념이 사라지고 우리는 지금 200개국이 넘는 전세계의 땅끝에서 온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누가 이런 노마드의 시대를 상상했겠는가? 

이제 우리는 본격적인 이주민의 시대에 살아간다. 이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우리 시대의 현상이다. 앞으로 이주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 땅끝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몰려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현실은 대단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특별히 선교적 관점에서의 이러한 변화의 트랜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변화에 주목하여야 한다.  

내가 속한 교단은 우리 한국교회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큰 장자 교단이다. 우리 교단은 이미  약 1,200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전세계에 나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선교적 사명감과 의식이 투철한 교단이다. 보통의 일반적인 교회의 정서가 웬만큼 교회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나면, 하게 되는 것이 선교사 파송이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우리는 그 선교사의 숫자가 교회 규모와 비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다.

선교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수단이며 목적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선교는 교회성장과 성공주의 목회를 대변하고 상징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말았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천박성이 그대로 교회내부로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선교가 교회와 목회자의 크기를 가늠하는 잣대인가? 선교사의 숫자가 교회와 교인들의 성공적 자리매김의 의미라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하여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진행되어야 할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비록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선교적 사명을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비판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쯤은 기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려고 하는 이유는 오늘날 선교적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전통적이고 일반화된 선교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계질서와 패러다임의 변화는 곧 교회와 선교적 전략도 변화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이 변화에 뒤처지거나 혹은 영영 그 변화의 중심에 자리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교회들은 그러한 변화에 무관심하거나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일까? 특별히 선교적 사명감이 그렇게도 강하다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감지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무식해서인가 아니면 무관심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교가 감상적 신앙의 산실이기 때문은 아닐까? 웬만큼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람치고 선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마치 선교가 신앙의 척도인 것처럼 혹은 선교를 매우 감상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선교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거나 그것을 마치 선교적 삶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오해다. 물론 밖으로 나가서 선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제 세상은 땅끝에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상황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고정관념을 부수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선교사의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특별히 나는 지금까지 우리 교단을 포함해 선교사들 중에 국내 거주 외국인 이주자 선교를 등안시하거나 폄하하려는 사례를 보아왔다. 국내 외국인근로자 선교가 현지 선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거나 혹은 우리나라에서 갖고 돌아가는 외국인근로자들의 신앙고백에 대하여 매우 의심하려는 경우다. 이것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해석이다.

이러한 사례는 말하기 곤란하지만 솔직히 그 안에는 선교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우리 교단만 보자. 현재 외국인근로자 선교나 다문화 이주자 선교가 세계선교부가 아닌 국내 전도부 소관으로 세계선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뿐만아니라 우리 공동체에서 보내는 역파송 선교사를 선교사 훈련과정에 입학시키려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비록 장신대를 졸업했지만 이 사람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내 선교사 훈련과정에 입학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매우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를 견지한단 말인가?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열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며,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선교가 매우 인간적인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문화 이주자 선교는 매우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선교의 기회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며 은혜일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호도하거나 왜곡시키려는 분위기는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다문화 이주자 선교의 경우는 매우 시사적이다.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서 선교하고 돌아오는 선교사들 중 상당수가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다문화 이주자 선교에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전에는  안그랬었는데...

특별히 모슬렘권에서 선교하던 선교사들 중 상당수가 국내에서 모슬렘권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돌아온 사람들이다. 만약 그러한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모슬렘 선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국내 거주 다문화 이주자 선교의 가치와 의미를 그들 선교사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 이상 다문화 이주자 선교에 대하여 왜곡하거나 폄하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국내에서 다문화 이주자들을 선교하는 목회자나 전문가들에게도 국내 선교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나는 17년 동안 국내에서 선교를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를 선교사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서 일정한 시간동안 선교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선교사다. 그들의 선교적 영향력과 역할에 관계없이 그들은 죽을 때까지 선교사다. 매우 명예스러운 호칭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저 밑바닥 목회자로 불리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불공평하다. 왜 나가서 선교하면 선교사이고, 국내에서 선교하면 여전히 특수 목회자인가?

선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어야 한다. 비록 현재 나가서 선교하는 선교사들과 일정한 부분 동의하지 못하는 예외사항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제 선교는 바뀌어야 한다. 이것도 세계선교다. 우리가 하는 다문화 이주자 선교도 국내 전도가 아니라 세계선교다.

분명한 것은 다문화 이주자 선교가 어떤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며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모슬렘권에 대한 기독교 선교는 이것이 대안이다.       

나는 이미 많은 수의 모슬렘권 선교사들로부터 그러한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고백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이미 그들 중 상당수가 국내에서 모슬렘 선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모슬렘 국가에 가서 선교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고백은 솔직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통한 선교가 바람직하다는 고백은 더욱 옳다.

선교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세상의 노마드적 흐름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여야한다. 우리가 밥그릇 싸움처럼 선교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하고 있을 때에 오히려 모슬렘권에서 온 근로자들이나 이주자들이 우리를 모슬렘화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솔직하고 바람직한 선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롭게 선교에 참여하는 것뿐이다.

솔로몬과 그의 이방 여인들이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였는가? 이방여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신상으로 가나안의 야훼 하나님과 신앙적 정체성이 무너지고 결국 민족이 망하고 말았다. 선교의 대상인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그들의 종교를 위한 전파의 대상으로 바꾸었다면 이것은 분명히 직무유기를 넘어 우리가 망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지금 국내에는 15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슬렘으로 개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 이주자로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를 모슬렘으로 개종시키는 선교사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세상에...

여기가 영적 전쟁터이며 선교적 싸움을 하고 있는 곳이다. 선교가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누가 이러한 영적 전쟁터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현실이다. 두려운 현실인 것이다.

선교에 대한 낭만주의를 경계하자.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가 있는 이곳이 선교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선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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