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노마드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노마드 이야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섬공동체 대표 유해근 목사

기독교 방송국 작가라며 전화가 왔다. 어느 잡지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를 보고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몇마디 대화를 주고받으니 한번 나가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침 몽골학교 건축문제도 있고하니 차제에 방송출연하면 '혹시 누가 알겠는가, 방송 듣고 큰 후원자 생길지도...'  참으로 기가막힌 상상력이다.
   어떤 사람들은 방송 출연하는 것에 목숨 걸고 덤빈다던데 나도 이참에 유명세를 타 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는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1등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고 모두 일등하겠다고 한다면 세상은 누가 섬기고 약한 사람은 어떻게 살겠는가? 1등은 한 명일뿐인데 모두가 일등 하려고 하면 나머지 실패한 사람은 어떻게 그 상실감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명한 사람 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르쳐준 목적지일지도 모른다. 명예와 권력 그리고 돈이라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세속적 가치와 자본주의 문화 앞에서  우리 모두는 예외가 없이 줄을 서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그런 삶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을 들었다. 뿐만아니라 내 아들에게도 그런 인생 살라고 묵시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크냐며 서로 경쟁하고 다투던 예수님 제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더 크고 높이 올라가려는 욕구 앞에서 조금도 양보가 없다. 세상의 이치다. 높이 올라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했으니 그 성공을 이루기 위하여 유명해지고 일등이 되어야  하고 성공의 자리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치열함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득권을 가지는 능력을 축복이라고 하고 그것을 얻어내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고 그러한 기득권 앞에 우리는 경의를 표한다. 

우리의 일등 콤플렉스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한국에서는 일등이 되면 곧 황제가 된다. 교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등교회는 문전성시다. 신학교 교수들도 일등 교회에 입적을 하면 조금씩 부스러기가 떨어지는지 모두 그리로 간다. 일등 앞으로 가는 세상이다. 일등이 되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능력을 주셨다며 그 일등 교회 목사님 설교 분석하고 그 목사님 이름값으로 박사학위를 딴다.   
그러니 일등이 되어야 한다. 그 명예와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등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 그 일등의 자리를 상징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건축이다. 누가 큰 건물을 지었으며, 누가 얼마짜리 건축을 하였느냐에 일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교회는 지금 한창 건축 중이다. 

유명해져야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가 성장해야 건축을 하고, 그러면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러기 위하여 기독교 텔레비젼 방송에서 설교 시간 돈 주고 사야 한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일등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방송과 언론에 그 이름이 거론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인기 연예인처럼 되었다.

나는 지금 그 일등 교회 앞에 산다. 우리 집 근처에는 일등 교회가 있다. 요즘 다시 건축을 시작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목사님이다. 매일 그 교회 앞을 지나다보면 나는 왜 이리 작아지는지...  
거기가 일등 교회라면 그래서 그 목사님이 일등이라면 우리 나섬교회는 몇 등쯤될까?  내가 사는 지역 국회의원이 되려면, 구청장 선거에 나가려고 하면 모두 그 교회에 입적하여야 한다. 교인수가 장난이 아니니 진짜 권력은 그 교회로부터 시작된다.   
구의원 정도는 그 교회 목사님이 지명해도 될지 모른다. 어느 교구 구역장 구의원하라고 손짓만해도 의원뱃지 다는 것은 문제없다. 교회권력이 세상권력을 만들고 세상권력은 또다시 교회권력을 똘만이로 만든다.  
주고받는 권력의 속성이 눈에 보인다. 
이 밑바닥 목회지에도 여전히 일등 콤플렉스가 존재한다. 누가 크냐는 경쟁의식이 얼마나 심각한지... 조금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단체가 크게 되었다면 뒤에서 씹어야 한다. 나도 그랬다. 이나마 이것도 기득권이라고 높이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오르려 한다. 달려야 한다. 일등이 목표다. 모두가 다 그리로 간다. 일등이 되려는 것이다. 지금 나도 그리로 가고있는 것일까? 

세상도 일등 콤플렉스, 교회도 일등 콤플렉스, 우리 이주자 선교 사역자들도 일등 콤플렉스!! 모두 일등이 목표인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 못해서 씹는거지 할 수만 있다면 씹혀도 일등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 아닌가? 

      기득권을 얻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싶어 우리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성공에 이르는 길 공부를 한다. 교회부흥의 방법이 있다면 그 세미나는 문전성시다. 이렇게 하면 성공적인 목회가 가능하다고 하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일등 콤플렉스 때문이다. 일등 콤플렉스를 조금만 자극해도 돈을 벌고 그것을 이용하면 저절로 광고가 된다.  

교회안의 일등 콤플렉스가 우리 한국교회를 죽이고 있다. 너도 나도 일등하겠다고 여기저기 손을 들고 난리다. 한기총 회장자리가 그렇게 좋아보이는지 모두 경쟁이다. 모두들 교회 크게 짓는 것에 몰입을 하니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권력과 성공의 자리라면 서로 이름 올리려하니 우리 목사님들 값은 그만큼 추락이다. 누가 우리를 존경하겠는가? 존경은  커녕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늘어간다. 

기득권 갖는 능력이 성공이라며 다 그길로 간다면 이제 나는 기득권 버리는 자유를 향해 갈 것이다. 얻는 능력보다 버리는 자유가 좋다. 손에 쥐는 힘보다 손 내밀고 손바닥 펴보이는 자유가 좋다. 모두 일등 하겠다고 한길로 달려간다면 나는 뒤돌아 꼴찌의 자리에 가야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지.    

"나는 방송에 안나가요. 나같은 사람이 나가서 할말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나가는 것이 좋아요. 나는 안하겠어요"
"그래도 목사님이 나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목사님 한번 해보시죠"
"아니요. 나는 안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한다. 그것이 내 삶이다. 나는 소유함으로 일등이 되는 것보다 포기함으로 자유를 얻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싶다. 

높이 올라가는 능력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자유가 더 위대하다. 성공하기위하여 남을 누르고 이기는 것보다 내려가 꼴찌가 되려는 결단이 더 귀하다. 이기는 것보다 그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혜롭다.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을 쫒아가는 것보다 나홀로 나만의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자기 주도적인 삶만이 진정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진정 하늘이 주신 행복이다. 고독하겠지만 그 삶속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앞에 갈 때에 일등부터 가는가? 일등이 앞장서고 나머지는 일등 쫓아가는가? 일등이 먼저 대표선서하고 세상에서 일등이 하늘에서도 일등인가? 하나님 나라는 일등 콤플렉스가 없을 것이다. 방송에는 나가지 않기로 했다. 나가서 몇 마디 내 인생 포장해 사람들 눈물 좀 빼면 우리 몽골학교 건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유명한 사람되면 좋을 것 같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유명해지면  피곤하고, 유명해 지면 누군가 나를 뒤에서 욕하고... 그런 것 싫어서 유명해지고 싶지않다. 자유하고 싶을 뿐이다.
당장은 도움이 되고 우쭐한 마음으로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그렇게 해서 나도 일등 콤플렉스 에 쫓겨살면 더 불행해지는 것 알기에 방송은 안한다. 나는 그냥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좋다. 내 인생 가는 것 그냥 이대로가 좋다. 무명의 눈먼 목사가 좋고 낮은 자, 가난한 우리 성도들 함께 여기서 사는 것이 좋다.

'다 그리로 가더이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밀려나는 자신들의 스승에게 찾아가 하는 말이다. 세례요한이 아닌 예수에게로 사람들이 다 가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다 그리로 간다고 속이 상해서 하는 요한의 제자들의 말이다. 속상해서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세례요한은 덧붙여 염장을 지른다.

'예수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배가 아파서 속이 상해 죽겠는데 요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더 나가 말문을 막히게 한다. 이것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삶이다. 요한처럼 사는 자유가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주도적인 삶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갈길 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아는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자유인만이 누리는 자유선언이다.   

기독교방송 안나가는 것이 무슨 자랑일까? 그렇다. 아무 것도 아니다. 나가도 되고 안나가도 되는 아무런 의미없는 말이다. 유명해지든 말든 그것도 상관이 없다. 문제는 내 마음이다. 자꾸만  흔들거리는 갈대 같아서 싫은 것뿐이다. 속이 상하고 마음이 뒤죽박죽되어 하는 넋두리다. 공연히 심술이 나서  하는 투정이다.   
그러다 읽은 요한복음의 세례요한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다 그리로 가더라며 속상해 투정부리는 제자들에게 하는 요한의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는다. 아무런 상관없이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했던 요한의 모습이 그리운 계절이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6-07-01 11:18:23 노마드톡에서 복사 됨] http://nasom16.cafe24.com/bbs/board.php?bo_table=B02&wr_id=113


hi
   


[04982]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로 1(광장동 401-17)
나섬공동체 대표전화 : 02-458-2981 사단법인 나섬공동체 대표자 유해근
COPYRIGHT © NASOM COMMUNI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