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도 자존심이 마지막 무기다
칭키스칸이 몽골을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정적이 있었다. 한때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며 동반자였던 자모카다. 가장 가까운 친구였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대립했던 정적이다. 자모카를 쓰러뜨리는 것이 칭키스칸의 마지막 숙제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자모카의 휘하 부하들이 자모카를 잡아 칭키스칸에게 끌고 왔다. 세상에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는가? 자신의 힘이 아닌 적의 분열로 만들어진 상황이라면 우리는 모두 대 환영과 큰 보상으로 그 부하들을 칭찬해 주지 않는가? 그러나 칭키스칸은 달랐다. 먼저 자모카를 끌고 온 사람들을 모두 처형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배반자의 말로에 대한 엄정한 징계였다. 분명 자신에게는 말할 수없는 큰 행운이겠지만 배반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적의 일이었지만 그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리 적의 분열이며 배반으로 일어난 결과지만, 그리고 그 배반의 결과가 칭키스칸에게는 행운처럼 여겨질 수 있었지만 칭키스칸에게는 그것이 적 내부의 배반이라고 해도 결코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내버려두는 경우에 몽골제국 내부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배반의 흐름을 제거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먼저 자모카의 부하들을 처형한 칭키스칸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자모카를 용서하고 자신의 장수로 만들기 위하여 설득하였다. 이제 자신의 사람으로 함께 제국을 만들어가기 위해 자모카를 용서하려는 것이다. 진정한 승자는 마지막을 한없는 유연성으로 장식하고 싶어한다. 한때 칭키스칸을 도우며 제국의 출발을 시작했던 자모카다. 칭키스칸의 아내 버르테가 적의 아내가 되는 수모의 현장을 함께 공격하며 버르테를 찾아오던 그날의 동지이기도 하다. 그런 자모카다. 버리기에는 너무도 사랑하고 친했던 동지이다. 어쩌다 정치적인 입장이 달라 적이 되었지만 그들 가운데는 언제나 애증이 함께 했다. 친구이며 경쟁자였던 그들에게 권력은 언제나 냉정했다. 하늘에 태양이 두 개 일 수 없다는 것은 우리를 언제나 불행하게 하는 것일까?
칭키스칸의 마지막 배려다. 살려두고 싶었다. 정말 친구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자모카 너를 살려두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모카는 그 배려와 마지막 희망을 거부한다. 왜? 정말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속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못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말이었을까?
자모카는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고 했다. 죽여달라고... 그러나 피는 흘리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친구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라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칭키스칸은 그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 주었다.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하여 자모카를 카페트에 둘둘 말아 죽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모카의 자존감에 대하여 나는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잊어버릴 수 없었다. 자존감의 실체는 무엇인가? 죽음까지도 그 자존감 앞에서는 무력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몽골학교 아이들에게서도 그런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우리 몽골학교 학생들은 1학년부터9학년까지 있으니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까지 있다. 아이들의 편차가 심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서는 묘한 기운 같은 것이 있다.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함이다. 혹이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 순간은 짧다. 자신의 약함을 보이는 것은 유목민의 후예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이들은 강하게 키워 진다. 한 겨울 영하 수십 도의 얼어붙은 대지를 달리면서 아이들은 강하게 성인식을 치루기도 한다. 그들의 눈은 독수리 같고 어쩌다 슬쩍슬쩍 보여지는 그들의 힘은 거의 동물적이다. 오래전 서울대학교에서 유학을 하던 어느 몽골인 자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 남자보다 몽골 남자가 더 좋다고 하던 그 철저한 유목민 여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한국 남자들은 무언가 만들어진 느낌이라고. 그러나 몽골 남자들은 아직 다루어지지 않은 야생마 같아 좋다고. 다듬어진 사람보다 덜 다듬어진 몽골 남자가 자신에게는 더 사랑스럽다고.
강하게 훈련되지 않으면 초원의 황망함을 이길 수 없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친구도 적도 없는 대지만이 덩그러니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그래서 유목민은 자신의 게르를 찾아오는 외부 손님에 대하여 무척 관대하다. 그들은 손님 대접하는 것에 익숙하며 그것은 그들의 문화이며 정신이고 철학이다. 비록 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경계와 함께 관대함이라는 이중적인 문화를 갖고 살아간다. 아무 것 없어도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도량을 갖고 있다. 왜 그런가? 자연에서 느끼는 원초적 외로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차라리 적이라도 좋으니 그 고독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독함을 아는 사람만이 강하다. 홀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고 그 외로움을 친구처럼 여기는 사람만이 강하다. 우리 몽골학교 아이들은 이미 그런 훈련을 받고 살아왔던 것이다. 혹독한 겨울, 황망한 대지를 달리는 조랑말 위에 작은 몸둥아리 하나 얹어놓고 수십킬로미터를 달리는 성인식을 치러본 몽골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강인함이다.
유목민은 설사 강하지 않다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자존감을 빼놓고 유목민을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강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은 오직 자신의 강함과 자존감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차라리 깨끗하게 죽어주는 것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이다. 죽음도 무섭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기 때문이다. 강함과 자존감의 화신들이 유목민이다. 내가 만난 유목민들은 거의 그랬다. 약한 유목민은 유목민이 아니다. 떠돌이일 수는 있어도 결코 진정한 유목민은 아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쵸카라는 몽골인 전도사가 있다. 몽골에서 경찰관이던 그는 굉장한 힘이 느껴지는 전형적인 몽골인이다. 외국인근로자로 찾아와 예수를 믿고 7년간의 신학수업을 마쳤으니 보통은 아니다. 그에게 졸라라는 아내가 있다. 그녀는 심각한 신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누가 도와준다고 하기도 전에 쵸카는 자신의 아내를 위하여 자신의 신장을 이식하였다. 남편이 아내에게 신장을 준 것이다. 굉장한 헌신이다. 옆에서 보기만해도 그 사랑이 어찌나 극진하던지... 세상에 가장 행복한 여자중 하나가 쵸카의 아내 졸라가 아닐까 싶다.
그에게는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딸아이에게 하는 아버지의 헌신도 대단하다 못해 안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쵸카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쵸카는 자존심으로 산다. 그에게 자존심은 마지막 힘이다. 나는 그의 가장 가까운 담임목사이면서도 그의 문제가 심각한 지경을 넘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나 그의 문제를 접하곤 했다. 나의 게으름도 문제였겠지만 그만큼 쵸카의 자생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웬만한 문제가 아니면 도움을 요청하려 들지 않는 그의 강인함의 연고다.
어느날 우리 안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의사소통의 문제였지만 그 바탕에는 자존심의 문제가 걸려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나는 아직도 우리가 유목민의 자존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존감은 제국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막강했던 몽골제국의 후손으로 갖는 당연한 흔적인지도 모른다. 지나친 자존감은 때로 왜 저러나 싶은 의심도 받게 하지만 나는 저들의 남다른 자존감을 이해하고 싶어진다.
저것마저 없으면 어떻게 사나?
그래서 유목민 몽골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남아있다. 우리의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와 물질주의로 인한 상처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을 떠난 몽골 대사가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한국 사람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고, 듣기로는 김일성 대학을 다닌 엘리트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우리에게 얼마나 당했던지 내가 만나 대화를 하다가도 '저 사람 한국 사람에게서 무척 상처를 많이 받았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교관으로 온 사람들도 그런 정도니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거나 시집온 여자들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있을까?
우리 몽골학교 아이들에게 그런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의 상처는 정말 깊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아이들에게도 그런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 한국 아이들하고 싸우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특별히 한국 아이들과의 갈등이나 그런 과정에서 한국 어머니들의 과잉행동과 언어폭력은 정말 우리 몽골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으니 이제는 조심해야 한다.
가난하다고 당하는 모욕은 누가 준 것이기 보다 스스로 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과 연약함에 대한 아픔은 그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 위축되고 작아지는 모습이 얼마나 가련한지 모른다. 나는 이미 그것을 경험하고 지금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그네들과 살다보면 참으로 내 자신의 한계에 부딪친다. 재정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언제나 작은 자라는 외소함에 대한 열등감이 나를 지배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이기고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나와 우리 나섬공동체는 이렇게 삶이 규정되었고 그 한계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을 때에 나는 그만 절망하고 울어 버렸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그 상황은 정말 아프다. 가난해서 아픈 것이 아니라 자존감이 상처받고 아플 때의 그 고통은 정말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화살 같은 아픔이다.
나는 수도 없이 그 자존감의 상실을 맛보았다. 나와 우리 나섬의 식구들에게는 그런 열등감과 자존감의 상처로 인하여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 사역자들도 그런 아픔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무언가 눌리고 있다는 느낌일까?
왜 우리는 누가 돌을 던진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런 것일까 묻고 싶지만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하기에는 그 문제가 너무도 크다.
가난하기 때문에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그 책임감 때문일 거다. 작은 상처에도반드시 대응하여야 한다는 유목민의 정신 때문일 거다. 한번 맞으면 반드시 보복해야 한다는 그 유목민의 삶 때문일 거다. 아니다. 야만인이라고 약탈자라고 그렇게 역사 속에서 무시당하고 외면당한 그 서러움 때문일 거다.
주류에서 밀려나 언제나 한쪽 귀퉁이의 버린 돌들처럼 취급당한 그 상처 때문일 거다.
그러나 이제 알아야 한다. 비주류의 역사를 살아야 했던 그 유목민의 세상이 돌아온다. 이제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고 그들의 정신과 문화 속에서 미래 사회의 트랜드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그 유목민에게서 삶을 배우고 생존력을 배우고 자존감을 배우고 그렇게 해서 미래에 진정한 승자가 되는 길을 배워야 한다.
이제 유목민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들이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날을 준비하는 자가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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