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이사할 준비를 하라
게르를 싸고 이사하는 몽골인들을 보면서 나는 삶에 대한 한없는 융통성과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유목주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단순한 관심과 흥미일뿐 나는 여전히 10년이 넘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사를 가고 싶어도 그것이 어찌나 엄두가 안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유목적 삶을 살기에는 너무도 게으르고 용기가 없다.
이사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유목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들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가 영원히 살 집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마치 유목민들은 그것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들처럼 이사를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서 저기로 이사를 한다.
기꺼이 이사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는 집이 언제든지 이사할 수 있는 구조다. 우리처럼 아파트나 단독주택이라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의 집을 게르(Ger)라고 하는데 그 게르는 바로 천막이다. 양털로 만든 천막에 나무로 기둥을 세워지은 이동식 주택인 것이다. 지금도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5분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우리는 게르를 볼 수 있다. 초원의 지평선 끝에 흰색 작은 게르가 보이면 그것이 바로 유목민의 집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나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강남의 압구정동에 현대아파트가 변함없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몽골의 유목민이 사는 게르가 언제나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떠나야한다는 생각이드는 순간 천막의 한쪽 축부터 해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가고 싶은 곳으로 아니 가야할 곳으로 이동을 한다. 이사는 그들에게 일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고집은 없다. 그것은 문화이며 철학이다. 이주하는 유목민의 삶은 농경민족인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하다.
내가 유목민의 게르에서 처음 잠을 잔 것은 2000년이다. 당시 몽골의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떠나 처음으로 유목민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얼마나 생소하고 즐거운 체험이었는지...
게르에는 한 가운데에 난로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부로부터 각 면에 잠을 자는 침대가 놓여진다. 물론 침대의 수는 게르의 크기와 관계가 있으니 일정한 개수나 사이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난로는 연통으로 천장에 연결된다. 하늘이 보이는 천장, 그러니까 게르는 천장이 열려있다. 그 천장으로 하늘과 연결된다. 난로의 연통은 그 천장을 통하여 하늘에 닿는다. 비가오거나 눈이 와도 그 천장은 언제나 열려있다. 공기가 통하고 그곳으로부터 어떤 신비한 영적인 흐름이 소통되는지도 모른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난로의 연통을 통하여 하늘과 소통하고 마주한다. 자연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으며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온다는 너무도 종교적인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목민은 짐승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이동하는 곳으로 쫒아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동물을 이끌고 초원으로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가축들이 자연스럽게 초지를 찾아가도록 뒤에서 쫒아가는 것이다. 맨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내가 잘못알고 있었다는 사실보다 가축을 뒤에서 쫒아가는 유목민의 문화에 어떤 심오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다. 물론 지금은 유목민들이 앞서 가축떼를 이끌고 유목을 하지만 오래전 초원의 유목민들은 자연스러움이라는 표현을 넘어 자유스러움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가축과 하늘과 초원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 자신들이 주장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그럼에도 언제나 그 생존과 존재의 가치가 허물어지지 않는 가장 자유함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느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자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새 인간의 욕심이 그들의 문화에도 침범했다. 욕심은 더 많은 가축과 초원을 점유하려는 공격성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전쟁과 약탈이 생겼다. 태초에는 없었을 그런 부자유스러움과 갈등이 초원의 유목민들에게도 예외없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아직 게르를 짓고 허무는 유목민의 문화는 변함이 없다. 이제 저 게르의 원형과 정신도 언제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정말 저 게르의 정신만은 남아있어야 할터인데...
그래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한 마지막 상징처럼 우리에게 용기를 주어야 할 터인데...
게르에 대한 정말 재미있는 추억이 생각난다. 몽골문화원 명예이사장이신 김건철 장로님과 이사님들이 부부동반으로 몽골 홉스골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처음가보는 몽골의 홉스곯은 환상 그 자체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쳐놓은 것보다 크다는 몽골의 호수가 홉스골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중 하나인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의 상류다. 그 호수의 깊이가 200m라니 그것은 호수가 아니고 바다다. 몽골에서 유일하게 배를 탈 수 있는 곳이니 바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말 태초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에덴이다.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그래서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시베리아의 타이가 숲이 호수를 감싸고, 몽골의 마지막 소수민족인 차탄족이 살고 있다는 홉스골이다. 종교적으로는 무당의 고향이다. 샤마니즘의 원형이 그곳에 남아있다.
홉스골은 오직 여름에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긴 몽골의 많은 곳이 여름 외에는 가기 어려운 곳이지만 유독 홉스골은 더욱 그렇다. 여름 외에는 추워서 갈 수가 없다. 가도 볼 것이 없다. 가도 머물 수 없을 만큼 험하고 힘이드는 곳이다. 그러니 홉스골은 여름에만 여행객을 맞이한다.
우리가 홉스골을 처음 간 것이 8월 중순이었다. 한국에서는 몇 십년만에 폭염이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밤이면 열대야로 잠을 이룰 수 없어 사람들이 힘들어 하던 그런 해였다. 당연히 더위에 찌든 여행객들에게 한국의 여름밤을 생각하고 얇은 티셔스로 아무렇게나 홉스골을 찾았다. 그것은 정말 아무렇게다. 정말 준비없는 아니 몽골을 얕본 우리들의 실수다.
환호성과 감동의 시간은 짧았다. 그리고 그 밤의 유명한 홉스골의 별구경도 짧았다. 게르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추워서다. 얼마나 추웠던지... 밤새 게르 중앙에 있던 난로에 타이가숲의 장작들이 탔다.
밤새 난로의 불을 지피는 우리들의 모습은 흡사 어느 한국의 시골집에서 보는 한 겨울의 모습이다. 연기가 게르에 가득하기도 했다. 난로가 꺼지면 추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장작타는 냄새가 오랜만에 한국의 도시 사람들의 옷과 마음에까지 배어들어온다. 타이가 숲의 자작나무 타는 그 냄새가 오랜만에 세속의 때를 씻어낸다.
그날 밤 우리일행이 경험한 게르에서의 하룻밤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새벽녘에 다 타버린 난로 때문에 땔나무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니 연로하신 장로님들, 안방마님 권사님 걱정으로 밤새 나무꾼처럼 뗄나무를 모으기 위해 밤을 지새셨다. 태울 나무를 찾으러 나가니 모두들 똑같은 마음이었다. 새벽별을 보면서 다 타버린 나무 걱정으로 산속 잔가지라도 찾으려고 움직이는 그 분들의 모습이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평생 함께 사신 장로님 권사님들의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이다. 역시 아내사랑은 남편이다. 아무리 연세가 드셨어도 여자는 남자가 지켜야 한다.
밤새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던 그날 홉스골의 게르는 지금도 생생하다. 게르는 움직이는 집이다. 지금 그 게르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그곳 홉스골의 게르촌을 간직하고 있다.
두 번째 유목민들의 이주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소유하지 않는 자유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론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유목민이다. 땅을 소유하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내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만큼 소유에 무관심하여야 한다. 타인에게 자신을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진정한 유목주의는 자유다. 존재함에 대한 열정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처음 몽골의 유목민을 만났을 때에 느낀 일이다.
몽골에 가면 모두들 꼭 한번 마시고 싶은 것이 있으니 마유주다. 말의 젖을 발효하여 만든 일종의 요구르트를 넘어 설익은 막걸리 맛이다. 많이 마시면 배탈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번은 우리 일행이 고비의 어느 유목민의 게르를방문했다. 마유주가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아무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혹시 조금만 맛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목민이다. 진정한 유목민은 자신의 것을 함께 나눈다.
나누지 않으면 유목민이 아니다. 유목민은 오히려 손님 접대하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에게 손님은 곧 하늘이며 그래서 손님 대접하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그들은 성서를 모르지만 성서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다. 유목민이 그리스도인이ㅣ며 그리스도인이 곧 유목민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수십 명의 여행객을 맞이한 고비의 유목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 자신의 마유주를 다 마셔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목민은 아무런 불평이나 고민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니 자유스럽게 자신의 모든 마유주를 손님들에게 내 놓는다. 그것은 충격이다. 저들에게 저 마유주는 생존의 필수품이다. 어쩌면 그 마유주를 지키려고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그것은 도전이며 신선한 충격이다. 그러나 유목민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내 놓는다. 다 내놓고 함께 마시자고 오히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 아닌가? 다 마시면 어떻게 하라고...
결국 그날, 우리 일행은 그 유목민의 마유주를 다 마시고 말았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셨다. 그날 밤 우리 중 몇분은 배탈이 나기도 했다. 욕심은 아니었지만 혹시 그 마유주에 어떤 신비로운 명약의 효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감언이설에 너무 많이 마신 것이다. 배탈의 경험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그날 배운 것이다. 유목민들을 진정한 유목민으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그대로의 고백이며 나눔에 대한 실천이다. 그것이 아무 때나 이주하는 유목민의 절대적 철학이며 가치이다.
세 번째는 인간이 규정한 울타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야 한다. 종교와 이념의 울타리는 물론이고 국가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금을 그어놓은 경계선의 한계를 허무는 삶이어야 한다. 민족과 국경의 개념이 사라진 사람에게만 진정한 이주자의 삶이 보장된다. 유목민은 경계가 없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규범과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학습받은 틀안에서 살아가는가? 반공교육과 기독교 교육을 받은 내게는 조금의 이탈도 용납되지 않는 완고함이 있다. 그러니 더 넓은 세상과 교류하며 살아가는데 얼마나 심각한 장애가 되는지 모른다. 문화와 이념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유연성이 없는 내가 유목주의를 알고 그들의 삶에 개입하면서 고정관념과 의식의 틀을 깨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지...
유목민은 삶의 경계를 무시한다. 빈부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으며, 배우고 못배움에 대하여 어떤 편견이나 차별도 없고, 남자와 여자, 나그네와 이방인에 대하여 언제나 열려 있다. 칭기스칸은 모든 영역에 대하여 열려 있었다. 그는 모든 종교를 받아들였으며, 모든 인간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다. 그에게는 인종과 종교,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나 장애는 없어야 했다. 그는 세계주의를 신봉한다. 세계주의는 유목민의 종교이며 신앙이다.
유목민은 인간이 설정한 어떤 경계와 한계도 무시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길이며 길이 아닌 것은 없다.
내게 유목주의를 가르쳐준 것은 유목민이다. 1992년부터 구로동 척박한 공단지역에서 만난 외국인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전세계에서 찾아온 유목민들을 만나면서 이전에 내가 갖고 있던 말로 다할 수 없는 편견과 차별의 의식에 대하여 반성했다. 인간을 구별하고 그들의 외모와 가진 것만으로 사람을 규정했던 이전의 내 꽉막힌 하수구같은 의식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진정한 유목민이 아니다. 그들은 말없이 와서 살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가는 것이 유목민이다.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미련도 두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떠날 줄 아는 나그네가 필요한 시대다. 너무도 오늘과 여기라는 기득권을 누리려는 우리에게 유목민들은 그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가르쳐 준다. 버리고 떠나는 나그네의식이 우리 교회와 목사들에게 있어야 한다. 그 하찮은 성 하나를 지키려는 마지막 손아귀의 힘을 풀어야 한다. 가진 것 자식에게 세습하느라 해괴한 논리로 교회를 넘겨주는 천박한 자본가 목사들에게 유목민의 의식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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