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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신앙 안에서 세워가는 행복한 다문화 가정

 



가. 다문화 가정과 새로운 사회

작년 봄 경상도 어느 보수적인 지역의 교회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담임목사님과 대화를 하는데 "유목사님, 우리 지역에는 외국에서 결혼해온 이주여성이 오 백 명이나 됩니다.'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필리핀, 태국, 몽골, 베트남, 일본, 우즈베키스탄 등 외국에서 온 며느리란다. 뿐만 아니라 그 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열 명 중 여덟 명이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시에서 목회를 하던 내게 그것도 이주자 목회로 잔뼈가 굵었다는 내게도 무척이나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젠 한국 며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농어촌 지역의 현주소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이런 다문화 현상이 주류를 이루었나 싶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세계 203개국에서 온 이주자가 약 150만 명 살고 있다. 우리 인구의 3%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이다. 향후 약 10%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문화를 넘어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의 진입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다문화가정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농촌지역, 도시근로자, 장애인 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결혼 기피현상은 자연스럽게 결혼이주여성을 대안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 다문화 가정은 현 20만 명에서 매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농어촌의 경우는 거의 절대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문화 이주자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일원이며 한 가족이다.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현실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과 차별의 문화이다.  

혈통중심의 가계를 이루어온 유교적인 문화와 정신이 특히 걸림돌이다. 유교적인 문화는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고 남성위주의 가족문화는 이주여성들에게 무척이나 생소하고 난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아직도 다문화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공동체 내부의 폐쇄적인 문화가 문제인 것이다.


나. 다문화 가정의 문제와 고통

우리는 심심치 않게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남편에게 폭행당하거나 때로 살해되어 사회적,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되었던 기억도 있다. 몇 년 전 베트남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잔인하게 폭행당해 죽음으로 큰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는 당시 그 사건의 담당 판사가 쓴 판결문을 갖고 있다. 그 판결문 중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야만적이며 미성숙합니다." 

우리사회 구성원의 야만적이며 미성숙함에 대한 비판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난 20여 년 간 이주자 목회를 하면서 수없이 이런 일들을 목격하거나 경험하였다. 때론 이것이 내가 함께 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절망하기도 했었다. 특히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면서도 비인격적이며 비신앙적인 모습을 보일 때면 더욱 절망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주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격적이며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인간은 동물보다 더 잔인하거나 폭력적일 수 있다. 이주자는 다름아닌 내 가족이며 식구라는 한 공동체의 의식이 없이는 다문화 사회를 살 수 없는 것이다.

이주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이다. 한 몽골여성은 내게 이렇게 고백한다. '목사님, 이제 둘째 아이를 낳을 일이 걱정이예요. 첫아이를 낳고 보니 시어머니께서 큰 솥에 미역국을 가득 갖고 오셔서 그것만 먹으라고 하세요. 우리 몽골에서는 아이를 낳고 양젖이나 양고기를 먹는데...' 그렇다! 내륙국가인 몽골에서 산 사람들은 미역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을텐데 미역국을 먹으라고 갖다 주는 것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다가 없기 때문에 그런 음식 문화가 없다. 베트남이나 중국에서는 아기 낳은 후 돼지 족발 삶은 죽을 먹는다. 우리와는 다른 산후조리법이다. 뿐만 아니다. 사사건건 문화 충돌이다. 말이 안되니 서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피차 바라만 볼 뿐이다. 언어와 문화는 사람이 사는 가장 기본적인 소통도구인데 함께 노력하지 않고 오직 내 것만을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몰이해를 넘어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주여성들의 고민은 아이들의 교육과 보육문제이다. 우리나라처럼 요란스럽게 아이들을 키우지 않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이상한 나라의 현실이다. 특히 엄마가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경우 그 자녀들은 당연히 한국어 습득능력이 떨어진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양극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정의 문제는 곧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당하는 극단의 소외와 교육의 개토화는 우리 모두가 감당하여야 할 미래사회의 문제가 될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거의 모든 다문화 가정의 문제이다. 그들은 보통의 우리 사회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 나섬에 속해 있는 이주여성들과 다문화 가정의 경우만 보더라도 거의 예외없이 힘들게 살고 있음을 본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아프다.   
   

다. 다문화 가정의 위기와 성도의 삶

다문화 이주자와 가정을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복음의 시작이다. 나누고 섬기는 교회의 본질적 삶이야말로 이주 가정에게는 가장 확실한 문제해결의 출구가 될 수 있다.
다문화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힘은 신앙뿐이다. 신앙으로 사랑을 가르치고 그 사랑의 삶으로 가정을 이루라고 권면한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만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믿음은 서로를 인내하며 바라보게 한다. 사랑은 이해하는 힘을 키워준다. 소망은 고통의 시간을 희망으로 바꾸어 준다.
여기에 교회의 섬김과 나눔의 실천적 삶이 더해질 때 그들의 고통과 아픔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꿈으로 변화된다. 나는 이것만이 우리 모두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이루어지는 꿈이다.

성서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에 대하여 특히 큰 관심과 사랑으로 대해주라고 한다. 나그네를 영접하고 굶주린 자들을 공양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께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다문화 이주자들은 곧 과부이며 고아이고 나그네들과 다름 아니다. 그들을 향한 섬김과 나눔은 곧 예수님을 따르고 영접하는 신앙인의 삶이다. 이것만이 행복의 길이다. 다문화 가정을 향한 하늘의 섭리를 깨닫는 자에게 이런 고백적 삶을 하나님은 요구하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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