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에스키셰히르까지 6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다. 이스탄불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여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새로 만든 페르시안 선교센터다. 지난 수개월동안 호잣트와 배선교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구석구석 선교사 부부의 기도와 마음이 느껴졌다.
선교센터를 방문하고 곧바로 출발을 했지만 이스탄불을 빠져나오는 데만도 두 시간이 걸리는 엄청난 교통체증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도착하는 시간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봉고차를 타고 에스키셰히르로 가는 차 안에서 호잣트에게 내년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성지를 가보자 했다. 이스탄불에서 바울의 뒷골목이라 불리는 안탈리야(Antalya)를 거쳐 바울의 고향인 다소(타르수스 Tarsus),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자라고 살았던 땅 하란(Harran)을 가자. 하란은 우르파(Urfa)라는 지역에 속해 있는데 어쩌면 아브라함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우르파라는 지명과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가 비슷한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란은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롯과 75세에 가나안으로 출발한 곳이었고 그의 며느리 리브가의 고향이며 야곱이 20여년을 넘게 살며 한 일가를 이룬 곳이다. 오랜 역사의 현장이며 창세기 족장들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는 하란은 내가 꼭 가고 싶은 곳이었음으로 내년의 코스로 정했다.
하란을 거쳐 튀르키예 동부지역 반호수가 있는 반(Van)이 그 다음 코스다. 반은 노아의 홍수 때 방주가 멈춘 곳이라는 아라랏산이 있는 곳이며 이란과 튀르키예의 국경지대다. 이란 사람들이 튀르키예로 오는 길목이니 이란 난민 선교를 하는 우리로서는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이다. 홍수의 흔적과 이란 난민들의 길목인 반은 그래서 내가 꼭 가려했던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려는 곳은 트라브존(Trabzon)과 삼순(Samsun)이다. 트라브존은 튀르키예와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젠 등 튀르키예 동북부의 국경지대이며 흑해의 그리스-로마 문명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특히 이란 난민들이 많이 모여 살기에 우리로서는 그곳도 또한 선교지이며 흑해와 그리스로마 문명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곳이므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삼순은 삼손의 고향이며 성서에서는 그곳을 본도라 했고 아굴라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렇게 돌면 약 4,000km의 먼 거리를 도는 긴 여정이다. 튀르키예를 한번 돌아오는 성지와 선교지 순례의 끝판왕이 되는 것이다. 당장 서울에 가면 2기 드림팀을 구성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마음이 설레는 것이 역시 나는 노마드 목사인 것이 틀림없다. 바울의 선교와 아브라함의 후손들 그리고 노아의 홍수까지, 나아가 이란 난민 선교지를 아우르는 성지와 선교지 탐방은 이렇게 내 마음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에스키셰히르까지 달려오는 여정은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언제나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가야한다. 나그네이며 순례자로 길 위의 인생을 즐기는 삶이 우리의 인생이어야 한다. 호잣트는 나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길 위의 순례자다. 그는 내 철학적 담론인 길 위의 순례자라는 말을 이해하는 몇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런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며 나는 그를 아브라함 혹은 야곱이라 불렀다. 그의 인생이 꼭 아브라함과 야곱을 닮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가 지나서야 도착한 에스키셰히르에서의 첫 일정은 저녁집회였다. 집회가 끝나 숙소에 들어갔을 때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나는 곧바로 나가 떨어졌다. 일어나니 아침이다. 어제는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를 만큼 피곤했다.
나는 순례자다. 길 위의 삶을 즐기며 죽는 날까지 순례자로 살아가고 싶다. 호잣트와 함께 그 여정을 간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아브라함과 야곱 같은 호잣트와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은 내 인생의 로망이다. 이것이 ‘미션 하이웨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미션 하이웨이는 반드시 이루어질 꿈이다. 멋진 순례자의 길을 상상하며 우리는 어느새 에스키셰히르 선교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