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를 말할 때마다 많이 든는 말이 복음통일이라는 말이다. 복음으로 통일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복음으로 어떻게 통일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통일방식은 복음통일이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일관된 입장인 듯하다. 복음통일이라는 말은 참 좋은 의미를 지닌다. 복음의 정신과 가치관으로 통일하자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복음통일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현실의 문제와 장벽 앞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음의 전달이라는 것이 선교의 전략인데 과연 북한에 어떻게 복음을 증거하여 그것이 통일에 이르기까지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인지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은 목적이지만 그 복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소위 선교의 전략이 그것이다. 선교는 전쟁과도 같아서 전략적이어야 한다. 복음이 들어가려면 복음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선교는 그런 복음의 전달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진행해 왔다.
조금 진보적인 교단이나 성도들은 북한 지원 사역 등을 북한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여 일하여야 한다고 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라는 북한교회의 채널을 통한 선교적 접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북한의 공식적인 교회라는 것이 허울만 있는 가짜들이라는 주장 앞에서는 많은 의구심만 남긴 채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여 북한과의 밀도 있는 통일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 방식이 아주 형편없는 전략이라고 매도하는 것 또한 경계하여야 한다.
반면 보수적인 교단이나 교회들은 북한에 교회를 재건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여 사역해 왔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며 그들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모금을 하고 북한교회 재건 사업을 독려하기도 한다. 북한교회에 성경을 보내자는 운동도 하는데 실제로 북한에 성경이 들어가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복음통일이든 북한교회 재건이든 북한선교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엄청난 재정과 열정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의 북한선교가 어디에 와있는지 물어야 한다.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선교이었는지 반성하고 점검할 때가 된 것이다. 현재 북한선교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교가 우리가 확신하듯 제대로 된 선교전략이었다면 지금의 남북문제를 비롯하여 북한 선교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북한선교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며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이 문제의 시작이었는지 답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 북한선교도 남북의 이념적 격차만큼이나 그 골이 넓고 깊다. 어떤 정권이 권력을 잡는가에 따라 북한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통일 전략이 급선회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북한선교는 종속적일 뿐 독립적인 사역이 될 수 없다. 이념과 권력에 종속적인 북한선교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선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정파가 권력을 잡는가에 따라 선교의 전략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달라져야 한다면 그 선교는 이미 선교가 아니다. 북한선교를 하는 교단이나 교회의 입장이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의미하는 이념적 교회로의 변질을 내포하는 것인 만큼 북한선교는 이미 선교가 아니라 이념의 종노릇에 불과하다.
북한선교는 독립적 선교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조금도 변함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적 변화에 관계없이 북한선교는 우리의 과제다.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세상의 이념과 변화 앞에서 무기력하게 방향을 찾지 못한다면 이제 그런 선교전략은 의미가 없다. 북한선교의 길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근본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게 응답하여야 한다. 지금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북한선교의 길을 찾아야 할 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북한선교의 의미를 되물어야 한다. 무엇이 북한선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