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흐볼트 전 몽골 총리는 1999년 내가 강변역에서 이주민 사역을 할 때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울란바타르 시장이었고, 마침 서울시에 공식 방문을 하면서 몽골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나섬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때 우리 공동체 멤버 중 오뚜꺼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그는 술만 마시면 우리 공동체 사무실을 찾아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그에게 술을 마시고 오지는 말라고 타일렀다. 그런데 하필이면 엥흐볼트 시장이 오는 날 오뚜꺼 형제가 술을 마시고 우리 공동체를 찾아왔다.
명색이 한 국가의 시장이 공식적으로 우리 공동체를 방문하는 날이니 술에 취해 찾아온 오뚜꺼가 영 못마땅하였다. 시장이 도착하니 여기저기 서울시 공무원들과 광진구청 직원들, 경찰, 경호원과 몽골 기자들까지 뒤엉켜 매우 분주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술에 취한 오뚜꺼가 시장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오뚜꺼는 시장과 악수를 하고 웃으며 포옹도 하였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이 없었다. 혹시라도 술에 취한 오뚜꺼가 시장에게 어떤 행패라도 부리면 어쩌나 싶어 누군가 그를 제지하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시장이 우리 공동체에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나는 오뚜꺼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시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너무 황당했다. 아니 놀라웠다. 그와 시장은 러시아 유학 시절 친한 친구였다는 것이다. 뜻밖에 한국에서 만나니 너무 반가워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 것이었다. 내가 엥흐볼트 시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오랫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으며 협력하는 관계가 된 것은 그날부터였다. 그다음부터 나는 오뚜꺼가 술을 마시고 와도 혼을 내지 않았다. 나는 오뚜꺼와 엥흐볼트 시장의 만남을 보면서 이주민 나그네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번 마음으로 새기고 배웠다.
그랬던 엥흐볼트 전 시장이 서울에 왔고 나를 만나고 싶다며 시간이 괜찮은지 물어왔다. 지금 그를 기다리는데 새삼 오뚜꺼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뚜꺼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잘살고 있을까? 그는 술에 취해 찾아와도 참 귀엽고 재미있는 친구였는데... 오뚜꺼가 보고 싶다. 갑자기 그때가 그립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엥흐볼트 시장과 더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몽골학교 때문이었다. 2000년 광장동 어느 고시원 지하실에서 몽골학교를 하고 있었을 때 그가 우리 학교를 방문하였다. 나는 엥흐볼트 시장을 건물 지하실로 안내하였다. 지하실은 깊었고 어두웠으며 내리막길이 위험해 보였다. 지하실로 안내를 받은 시장은 내려가려다 잠시 멈칫하였으나 이내 지하실로 내려갔다. 임시 칸막이로 교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어두운 지하실에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칸막이를 열어젖히니 작은 교실 안에 아이들이 가득 앉아있고 손을 흔들며 시장에게 인사를 한다. “센베노!” 웃으며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이 학교입니까?” 시장이 내게 물었다. 그의 물음은 어떤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었고 오히려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 후 엥흐볼트 시장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내가 일행을 이끌고 몽골을 방문하면 언제나 울란바타르 시장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그는 우리 모두를 초청해 함께 식사하며 반겨 주었다. 뿐만아니라 내가 부탁을 하면 흔쾌히 들어주곤 하였다. 그 무렵 우리 공동체는 몽골에 선교사를 보내었고 교회부지가 필요했는데 그는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울란바타르 요지에 건축 부지를 내주었다. 게다가 매우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의 가초리트 지역에 수양관을 인가해 주었다. 그때 울란바타르 중심가에 지어진 선교교회는 몽골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가장 큰 교회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서울에 와서 나를 만나고 싶다 한다. 반갑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