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이의 아빠는 한국 사람, 엄마의 고향은 베트남이다. 윤택이네는 3남매인데 윤택이는 그 중 장남이다. 내가 윤택이네를 기억하는 것은 한·베학교를 시작하고서이다. 윤택이네는 강남 우면동에 산다. 토요일이면 윤택이 아빠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한·베학교에 온다. 윤택이 아빠를 처음 본 것은 한·베학교 때문이지만 그 아빠는 내게 신기하게도 많은 의미를 가져다준다. 실은 한·베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그만둘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한·베학교에 나오던 날 주차장에서 나와 마주친 윤택이 아빠는 작은 볼펜 하나를 내게 건네었다. 자기가 지금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다며 내게 포장을 뜯지 않은 볼펜 한 자루를 건네었다. 그때 나는 그 볼펜을 받아쥐고 한·베학교를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볼펜 한 자루가 한·베학교를 포기하지 않게 한 힘이 되었다.
성탄 전날인 오늘 윤택이 아빠는 성탄카드 한 장을 주기 위하여 우면동에서 일부러 나를 찾아왔다. 윤택이 아빠의 손은 거칠고 두툼했다. 나는 그 손을 잡으며 또다시 한·베학교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성탄카드 한 장을 들고 찾아온 윤택이 아빠를 실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단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반드시 누군가를 통해서 내게 사인을 보내시는 주님을 느낀다. 주님은 윤택이 아빠를 통해 내게 한·베학교를 포기하지 말라 하신다. 새해에도 한·베학교는 계속 가야 할 것 같다. 한·베학교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그 누군가가 바로 나섬이고 지금 나섬이 그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힘들다. 정말 지쳤다. 쉬고 싶고 ‘여기까지...’ 하면서 손을 털고 일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오늘 성탄카드를 받았다. 윤택이 아빠는 성탄카드에 이렇게 썼다. “괴로울 땐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내 주위에 그늘진 곳을 돌아보며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바라며 2024년 청룡의 해에는 늘 좋은 일만 있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윤택이 아빠의 말대로 오늘은 다시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웃음이 나온다. 코끝이 찡하다. 기분이 좋다. 이것이 내 삶이다. 오늘은 그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