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떠나 새로운 땅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은 전세계의 주도권을 아시아에서 유럽과 신대륙으로 옮기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는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도전 의식을 잃어버리고 내부의 문제에 매몰됨으로 역사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였다. 1453년 오스만투르크가 동로마제국 즉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유럽에서 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을 장악함으로 유럽은 더 이상 오스만의 땅을 통하여 아시아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오스만 제국이 길목을 장악했다는 것은 기존의 길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은 새로운 길과 대안이 필요했다. 길이 없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가려는 누군가가 출현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에게는 마르코 폴로라는 위대한 개척자가 있었다. 그는 아시아를 여행하고 동방견문록을 저술하였는데 그때가 1296년경이다. 동방견문록은 원나라 즉 몽골제국의 땅을 비롯하여 동방의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쓴 여행기다. 마르코폴로가 소개한 아시아를 찾아 콜럼버스가 떠난 시점은 1492년, 거의 200년의 차이가 있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들고 지중해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에게 유일한 단서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신대륙을 발견함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람이 되었다.
나는 선교적 신대륙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엄청난 선교적 신대륙을 준비해 놓으셨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피차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목회와 선교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창조적이며 놀라운 신대륙 같은 선교의 영역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북한선교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전략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이념과 정치의 지형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북한선교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런 선교와 목회를 꿈꾸며 살았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신대륙 같은 땅을 찾고 싶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전략으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것이 32년 전에 시작한 이주민 선교였고 이제는 이주민 선교를 통한 새로운 북한선교다.
몽골을 통한 북한선교의 길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영역이다. 몽골 장애인 사역을 우리가 하려는 선교와 관계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탈북자 문제를 새롭게 인식한 것도, 평화경제공동체를 통한 북한선교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그렇다. 나는 새로운 대륙을 찾아간 콜럼버스의 심정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콜럼버스가 결국 신대륙을 찾았듯 우리도 새 길을 찾을 것이다. 나섬이 그 중심이 되어 새로운 지평을 열고 길을 만들 것이다.
오는 8월에 있을 ‘울란바토르 평화 포럼’을 준비하면서 설렘과 또 한편 너무 버겁다는 두 가지 마음을 느낀다. 누가 참여할 것인가부터 어떤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할 것인지, 그리고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도 없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밤새 생각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렇게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듯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을 그려가며 계획을 세우고 또 현실로 만드는 길을 만든다. 길을 만드는 삶이란 고단하고 피곤하다. 그러나 신대륙을 발견하는 시간이라 믿고 떠나기로 한다. 가야할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언젠가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 믿는다. 나섬이 가려는 여행에 독자 여러분도 동행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