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신 주님의 말씀은 나섬의 사역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끄신 말씀이다. 나섬의 사역을 하면서 수없이 막막한 벽을 만났다. 구로동에서 눈에 심각한 질병이 생겨 결국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지난 32년 동안 나섬과 몽골학교가 여기에 있도록 지탱해 준 말씀이다.
뚝섬에서 구의동으로 장소를 옮겨야 했을 때 누구도 우리에게 공간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는 공간을 얻을 만큼의 돈도 없었다. 다만 나는 간절했고 절박했다. 만약 나그네와 함께 할 장소를 구하지 못한다면 한강 고수부지에 천막이라도 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만큼 나는 간절했다. 가까스로 우리 집을 담보로 하여 대출을 받고 구의동으로 장소를 옮겼을 때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엄청난 이자에 빚잔치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다. 거의 모든 전세 비용을 은행에서 빌렸으므로 매달 갚아야 할 돈은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1998년 1월 첫 주부터 실직한 외국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을 시작하였다. 결국 그것이 오늘의 몽골학교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무료 급식소로 밥을 먹기 위하여 찾아온 몽골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을 위해 작은 공부방을 시작하면서 몽골학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장소를 고민할 때 누군가 장소를 내주었다. 지하의 작고 누추한 공간이었지만 작게라도 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정식 외국인 학교로 인가를 받으려 할 때 아무도 우리를 이해하고 도와주려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학력 인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간절하고 절박했다. 2년여의 긴 싸움 끝에 결국 우리는 정식학교로 인가를 받을 수 있었고 마치 벽이 열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2003년도에 광장동의 작은 단독주택을 헐고 학교 건물을 지을 때도 우리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비가 억수로 내리는 장마를 뚫고 학교 건물을 지었다. 건물을 짓던 도중 돈이 떨어졌을 때 놀랍게도 당시 광진구청의 도움으로 건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영섭 구청장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분도 나를 도운 것이 자신의 구청장 재임 시절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2008년 서울시로부터 현 위치의 부지를 임대받았으나 학교 건물을 완성하기까지는 지난한 행정소송을 거쳐야 했다. 대형 로펌과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것도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4년 지금의 몽골학교를 건축할 때는 차라리 저를 죽여서라도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간곡한 기도를 드렸다. 밤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잠든 날이 없었다. 나를 여기 존재할 수 있게한 힘은 간절함이다. 간절해야 이룰 수 있고 절박해야 이겨낼 수 있다.
한가지 잊을 수 없었던 일은 우리 학교 인가를 받기 위하여 마지막 절차를 밟을 때 운동장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통보에 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다. 하지만 간절하게 기도하는 가운데 주께서 내게 지혜를 주셨다. 결국 장신대 운동장 무상임대 허가서를 받아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를 설득할 수 있었다.
나는 간절함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간절하면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나는 확신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운 비전 또한 간절함으로만 가능하다. 새로운 사역을 지금까지의 사역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몽골과 북한을 잇는 사역이다. 국제적이며 세계적인 프로젝트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는 사역이다. 오직 주님이 내게 비전을 주셨기에 나는 그 비전을 품고 무작정 몽골에 간다. 오직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믿음과 꿈을 갖고 몽골에 간다. 마침내 북한은 열릴 것이다. 간절하면 문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