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이사야 43장을 묵상한다. 새 일을 행하시겠다며 사막에 길을 만드신다는 말씀 앞에 나의 마음이 멈춘다. 과연 사막에 길을 어떻게 만들어 주실까?
'길'이라는 말이 갖는 함의는 엄청나다. 거기에 ‘사막 또는 광야’라는 말은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두 단어를 조합하여 '사막의 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사막에 길을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막에 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거대한 프로젝트다. 그러니 하나님만이 사막의 길을 만드실 수 있다.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잠잠히 그것을 바라본다. 그 일의 주체는 결국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대량 탈북을 대비해 몽골에 탈북자 캠프를 만들고 평화경제의 모델을 세우고자 하는 일은 사막의 길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방대한 사업이다. 계획을 갖고는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자신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나섬의 사역은 언제나 그래왔다. 지나온 우리의 사역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마음을 비우고 산다. 그렇지 못하면 그 무거운 짐에 짓눌려 벌써 죽었을 것이다. 10년 전에 몽골학교를 건축할 때도 그랬고 그것을 운영하고 여기까지 온 것도 그러하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하셨으니 내가 살았다. 역파송 선교사들을 보내고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또 이 고백을 한다. 그들이 공부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선교사로 사역하는 모든 일들은 기적처럼 만들어졌고 지금의 위대한 사역을 이뤄가고 있다. 이 또한 사막의 길을 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일은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졌기에 나는 실감하고 또 믿는다.
사막에도 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막에 길을 만드는 것은 오직 주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며 반드시 그날은 온다. 우리 모두 그 길 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사막의 길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다만 나는 상상하고 꿈을 꾼다. 사막을 걷는 꿈이다. 고비사막에서 길을 보았을 때처럼 나는 황무지 위에 길을 만들고 계시는 주님의 힘을 믿고 바라본다. 희미하지만 조금씩 길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그 길의 사역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