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한국교회의 몰상식 그리고 반사회적 헛발질이 반복되면서 마지막 징조임을 감지한다. 반사회적 적폐로 낙인찍힌 교회의 미래는 어둡다 못해 아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까지 전락한 것일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믿고 목회를 하며 기독교와 한국교회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하겠는가? 우리는 가짜 뉴스나 전파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바울이 말하듯 가짜 선생들로 몰락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존재할 자리는 없다. 우리는 철저하게 망했다. 아니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면 더 망하고 무너질 것이다.
이런 와중에 자신의 탐욕과 이기적인 생각으로 교회를 욕망의 도구로 삼고 세습과 자신의 영달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는 이미 기독교를 떠난 이단자거나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이비임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한줌도 안되는 권력과 돈을 갖고자 갖가지 술수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세상의 손가락질에 아랑곳 하지 않는 철면피의 정치적 목회자들은 가라. 그런 교회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교회와 예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아직도 몰락할 것이 있다면 차라리 끝까지 무너지고 다시 집을 짓는 것이 낫겠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의 교회만은 든든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깝고 안쓰러운 일이다. 우리에게 예외가 있다면 남은 자로 구별 받는 것뿐이다. 하지만 누가 남을 것인가? 누가 남은 자로 구별되어 노아처럼, 엘리야처럼 요셉처럼 쓰임 받을 것인가 말이다.
남은 자는 지금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방주를 짓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들은 변방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예수의 마음으로 이 상황과 교회의 몰락을 묵묵히 바라보며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걷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과 고난의 현장을 지키며 고난 받는 자들의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돈과 종교적 권력 앞에 줄서지 않음은 물론이요, 그런 것들에 대하여 멸시하며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의 화려함과 부자된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가 아니라 갈릴리 작은 자들의 친구로 남겠다며 소외와 빈곤함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들이다. 고난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고난이 곧 희망임을 믿고 작은 목회의 현장을 지키는 자들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것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제는 더 낮고 작은 자들의 친구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 마지막 남은 자들의 길목임을 자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