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13절 이하에는 아기 예수께서 헤롯의 핍박을 피해 애급으로 피신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헤롯이 죽기 전까지 예수는 애급에서 난민으로 사셨다. 예수가 정치 난민이 되신 것이다. 성서에 예수께서 난민이 되셨다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삶과 상황에서도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입국했다. 391명의 난민 중 미성년자가 240명이라 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도를 통해 접한 후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에 어떤 진액처럼 남아 있다. 법무부와 교육청에 전화를 하고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우리가 돕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터키에 호잣트 선교사를 파송하고 가장 첫 번째 하려 했던 사역이 이란 난민들의 자녀들을 위한 요셉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요셉이 나그네로 살면서 어린 나이에 겪었을 고단함과 더불어 교육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 교육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그 계획이 보류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요셉학교를 세우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재한몽골학교를 시작한지 올해로 22주년이 되었다. 1999년 8명의 몽골학생으로 시작한 우리 학교가 이제는 300여명의 어엿한 학교로 자리를 잡았다. 그간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내게는 가장 의미 있는 사역이며 행복한 사역자로 살게 한 소중한 학교다. 몇 년 전에 시작한 아시아청소년학교도 내게는 매우 소중하다. 위탁형 대안학교의 형태지만 몇 년이 지나면 그 학교도 자리를 잡고 크게 쓰임 받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나의 남은 삶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세계 곳곳에 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교육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재한몽골학교와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와 같은 학교는 매우 중요하다. 터키에 이란 난민 아이들을 위한 요셉학교를 비롯하여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베트남, 인도,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학교는 북한에 세우는 통일학교와 평화학교다. 그 학교는 오랜 분단으로 인하여 갈라진 우리를 치유하고 화해시키는 학교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학교다. 예수께서 분열되고 갈라진 우리 사이의 모든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하셨던 것처럼 그 학교는 하나 됨의 학교가 될 것이다.
여기에 메타버스를 통한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의 메타학교를 꿈꾸어 본다. 메타 유니온 교회((Meta Union Church)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 가면서 한 걸음 더 메타학교로까지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은 무한하다. 그 상상력은 또 하나의 믿음이다. 나는 언제나 꿈꾸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하여 ‘산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