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목사님의 원로목사 추대예배에 참석했다. 오랫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온 교우들의 동의와 사랑 속에 원로목사로 추대된다는 것은 참으로 은혜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축사하러 오신 목사님이 축사가 아닌 자신의 자랑과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그만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의 원로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나는 그만 큰 실수를 할 뻔하였다. 그 목사님은 강단에 오르자마자 자기자랑을 시작하였다. 지나가던 대통령이 자신의 교회에 찾아와 엄청난 소동에 얼마나 힘드시냐며 위로를 했다는 말부터 자신과 교회를 음해한 세력이 있으며 그 배후에는 좌파들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나는 그 순간 손을 번쩍 들고 '그렇다면 나는 좌파입니다'라고 말할 뻔하였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속이 불편하고 마음이 뒤틀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원로목사로 추대된 목사님께 내가 느끼고 불편했던 이야기를 전화로 말씀 드렸다. 목사가 우상이 되고 나아가 괴물이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분노보다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속앓이 그만하고 내 갈 길 가자는 생각도 들었다.
교회가 우상이 되고 목사는 괴물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교회의 역사 속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 한국 교회 안에는 그런 교회와 목사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반복되어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상이 되고 괴물이 되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할 수 있으면 그런 신화를 만들고 전설이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목회와 교회도 마찬가지임은 말할 나위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배후운운하며 좌파의 음해가 자신의 교회와 자기들을 고통 받게 한 이유라는 말을 듣자니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데 그것을 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형교회가 되고 그것을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이것은 한국교회의 흑역사가 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았으며 한국교회가 얼마나 큰 손실을 입었는지에 대하여 사과하고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배후를 언급하고 나아가 그 배후에는 좌파가 있다고 하니 그 목사님 말씀대로라면 나는 좌파인 것이다. 차라리 좌파가 되는 것이 낫겠다. 이제는 이런 글도 그만 쓰려 한다. 무슨 희망이 있어야 글도 쓰고 말도 하는 법인데 이제는 그럴 힘도 희망도 없으니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다고 한다. 이제는 우상이 된 교회를 떠나는 것이 목사로서 맞는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목사도 할 만큼 했으니 무슨 아쉬움이 있겠는가마는 떠나자니 이것저것 걸려있는 것이 많아 머리가 아프다. 교단이 무엇이며 종파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돌아서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여전히 미련이 남아 내려놓지 못할 뿐이다.
떠난다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것도 아니다. 이제 그만하겠다고 내 스스로가 정하면 된다. 내가 그만하면 그것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누가 정리해 주는 삶이 아니라 내가 정리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살아온 내가 이제 와서 누군가 나를 정리해주기를 바란다면 그것도 우습다. 그들이 나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정리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내 마음에서 정리하면 그것으로 될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부채감정 없이 살고 싶어 밑바닥에서부터 살아왔다. 높이 올라가려고 몸부림치지 않았으며 정치판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설레발치며 다니지도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비주류 아웃사이더로만 살아온 사람이다. 그것이 좋아서 변방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류근처에는 기웃거리지도 않았으며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살아왔다.
나는 자유롭게 살아 여기까지 왔으니 그 자유로 내 삶을 정리할 것이다. 당신은 우상이 되고 괴물이 되라. 더 큰 우상이 되고 더 유명한 괴물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