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선교’라는 말은 내가 나섬 사역을 신학화하는 과정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에는 ‘노마드 신학’ 혹은 ‘유목민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좀 더 쉽고 단순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장터신학 혹은 장터선교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장터선교는 우리의 오래된 시골 장터를 연상하면 된다. 흔히 5일장이라고 하면 5일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리는 장이다. 시골에 장이 열리면 그 장터에는 어김없이 물건을 팔기 위하여 장사꾼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지금의 세계는 마치 시골장이 서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선교의 전략도 그런 변화에 맞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전 세계는 이주민들로 흘러넘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흘러들어간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이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로 흩어지고 있다. 전 세계는 유학생들로 새로운 교육의 장이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새로운 미지의 땅을 찾아간다. 기회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려는 이들로 세계가 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도 장이 서는 곳으로 찾아가는 전략적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나섬의 장터선교지 중 한 곳이 터키다. 터키는 이란에서 찾아온 난민들의 세상이 되었다. 실은 이란뿐만 아니라 시리아와 쿠르드 민족, 아프가니스탄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난민들의 천국이다. 터키 곳곳에 난민들이 살고 있으며 오래전 서머나 교회가 있던 이즈밀이라는 곳은 지중해와 에게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정거장이 되었다. 우리는 2014년 6월 호잣트 선교사 가정을 이스탄불로 역(逆)파송하였고 현재까지 엄청난 선교적 열매를 맺고 있다. 이렇듯 장터선교는 새로운 선교의 개념이다. 난민들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머무는 곳으로 찾아가는 선교다. 물고기들이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내리는 어부처럼 우리 역시 선교의 장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장터선교의 개념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장을 여는 선교다. 그 실례가 나섬공동체와 재한몽골학교다. 이주민 선교의 오랜 전략은 이주민들이 사는 지역에 찾아가는 선교였다. 그러므로 공단지역을 비롯하여 이주민이 모이는 곳에 교회를 세우거나 선교센터를 마련하는 일이 당연시 되었다. 나섬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주민들이 전혀 살지 않는 매우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에 선교지를 마련하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의아해 했으며 이런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주민선교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전하였으며 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섬과 몽골학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몽골학교 인근으로 몽골인들이 이사를 하기 시작하여 이제 학교가 위치한 광진구 광장동을 중심으로 새로운 몽골인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주민들이 모이는 곳에 찾아가는 장터선교와 동시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장을 만들어 그 장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새로운 장터선교의 개념을 만들 수 있다. 장터선교는 이렇게 두 개념의 선교를 말한다. 장이 서는 곳으로 찾아가는 선교와 우리가 장을 만들어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선교다.
나는 이 두 개념의 장터선교를 동시적으로 실행에 옮겼으며 그 결과는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장터선교의 시대로 선교의 전략을 바꾸어야한다. 나는 이것을 신학화하고 그 이름을 장터신학 또는 장터선교라 부른다. 이제부터 나섬의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