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점심을 밖에서 먹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다. 11시에는 나가야 하는데 아내의 일은 여전히 끝나질 않는다. 11시 30분이면 나갈 수 있을까 했지만 아내는 내말을 들을 겨를조차 없다. 아내의 일거리는 오롯이 내가 만든 것이니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내 책임이다. 아내와 단둘이 밖에서 밥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내의 말로는 군목시절 아내의 생일날 둘이서 샤브샤브를 먹은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러니 35년쯤 된 것이다. 그 후로 아내와 둘이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놀랍다 못해 기적이다.
결국 12시가 훨씬 지나서야 비로소 시간을 억지로 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날도 그대로 집으로 갔을 것이다. 점심은 무엇으로 먹을까를 생각하기조차 피곤했다. 사실 우리는 그대로 집에 가서 잠이나 실컷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만든 시간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일단 춘천으로 가자했다. 춘천에 가서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자했다. 경춘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홍천으로 가고 싶었다. 33년 전 내가 군목으로 마지막 근무를 했던 11사단 13연대 사자교회에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고속도로에서 네비게이션으로 홍천군 북방면을 찍고 사자교회를 찾아갔다. 1988년부터 1990년 전역을 할 때까지 근무 했던 곳이다. 나는 꼬박 2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강원도 양구에서 초임 군목을 마치고 두 번째로 근무했던 곳이다.
사자교회는 예전의 그 자리에 있었다. 언덕배기 가장 높은 곳에 교회가 있었다. 교회 옆에는 무덤이 몇 개 있었는데 그곳에서 군종병들이 우리 큰 아이를 데리고 놀던 기억이 났다. 그 교회를 지나 한 100m쯤 가면 조 상사의 부인 이 집사님이 살던 집이 있었다. 얼마 전 문득 이 집사님이 자신은 권사가 되었고 남편은 장로가 되었다며 연락을 해서 반가이 전화를 받았었다. 그리고 몇 개월 전 이 권사님은 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전화하여 암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기도를 해드린 일이 불과 몇 개월 전이다.
교회는 새로 지어졌어도 오래전 사자교회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신병교육대라 신병들이 많이 와서 예배를 드렸고 연대장도 종종 교회에 나왔었다. 그 연대장은 후에 소장까지 진급을 했었다. 그 교회에서 만난 군종병 중 몇 명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중 원천침례교회 방수현 목사가 있다. 그는 참 좋은 목사요, 내게는 고마운 사람이다.
아내와 그때까지도 점심을 먹지 못했다. 두시가 지나 아내가 배가 고플 것 같아 홍천 북방에서 동면으로 가자했다. 그 당시에 그곳에서 먹었던 막국수가 생각나서다. 그러다 문득 홍천에 한우고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 결국 한우식당을 찾아갔다. 이미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으니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아내를 앞세워 정육 식당 안으로 들어가 한우고기 한 팩을 사들고 자리를 잡았다. 둘이서 먹는 늦은 점심이다. 아내는 단둘이 먹는 두 번째 식사다. 35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아내와 단 둘이 먹는 식사자리가 단 두 번째라니! 나는 그렇게 살았다. 한참이나 모자란 남편임을 느끼며 아내에게 미안했다. 저 여자는 이런 나하고 평생을 살았다. 단 둘이 밥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여자다. 이 여자가 내 아내다. 내가 바보인가 아니면 저 여자가 바보인가? 아내는 맛있다고 했다. 더 먹으라고 실컷 먹어보라고 했지만 고작 5만원도 되지 않는 한우고기 한 팩으로 끝이 났다. 아내는 한우고기가 좋은 것이 아니라 나하고 밥을 먹는 그 시간이 좋은 거다.
돌아오는 길은 홍천에서 양평으로 국도를 이용했다. 아내는 내게 잠을 자라고 했지만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시간이 좋았으니까. 그리고 자주 이렇게 밥을 먹자 했다. 아니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았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야겠다. 아니 조금 쉬었다 가도 될 일이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한나절 짧은 데이트였는데도 아내와 나는 이전에 느끼지 못한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내의 소녀 같은 웃음이 느껴진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오래전 아내를 생각하며 웃었다. 반나절의 여행은 잊혀진 과거를 찾는 여정이었다. 33년 전 군목시절의 교회를 찾아 아내와의 두 번째 점심,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그래도 식지 않은 사랑을 찾고픈 순수한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까지 온통 그날은 그렇게 과거를 찾고픈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