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사가 들어온 이후 당시 중국에서 선교하던 네비우스(John L.Nevius) 선교사를 초청해 한국교회 선교에 대한 선교세미나를 1990년에 열게 되었는데 그때에 나온 것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이다. 네비우스 선교는 한마디로 자립(selr-support), 자전(self-propagation), 자치(self-government)의 정신을 선교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으로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당시 우리는 조선 후기의 몰락하는 국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극심한 가난과 사회적 분열, 갈등 그리고 외세의 침략 야욕으로 매우 심각한 위기와 고통 속에 있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이뤄지기까지 온통 나라가 망해가는 형국이었으므로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도 비전도 주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때에 네비우스 선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교사들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자 했을 민중의 바람에 대하여 오히려 스스로 일어나라 하던 네비우스의 외침은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힘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저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로 교회가 힘을 잃어간다. 나섬과 같은 특수선교지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소위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교회는 자신들의 문제로 다른 공동체를 돌볼 여유가 없어졌다. 교회마다 고통의 상황 속에서 헤매고 있다. 교인들이 줄어드니 헌금이 줄어 당장 교회 운영에 문제가 되고 있다. 목회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때에 우리는 다시 네비우스를 생각하여야 한다. 네비우스는 스스로 서는 교회 공동체만이 강한 공동체가 된다고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도 자립하고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다.
나는 오래전부터 스스로 자립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목회해왔다. 30년을 넘게 나섬의 목회를 하면서 스스로 생존하고 자립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역파송 선교사들에게도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나섬의 정신이며 철학이다.
코로나가 모든 상황을 바꾸고 있다. 마치 조선 후기에 무너지는 공동체 앞에 선 교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이제 그럴 상황이 아니다. 스스로 일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섬의 사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6개국 외국인의 예배가 있고 몽골학교와 아시아청소년학교 등 이주민 자녀 교육이 있다. 이미 자신의 민족이 있는 곳으로 역파송된 5개국의 현지인 선교사가 있고 몽골에서부터 시작하려는 평화선교사역도 있다. 나아가 몽골 투르크 선교벨트를 만드는 비전까지 우리의 선교사역은 매우 광범위하다. 이 모든 사역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어떻게 제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하고 아프다. 그럼에도 우리는 갈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네비우스 선교사가 가르쳐준 방식이어야 한다.
자립하고 자전하며 자치하는 교회 공동체를 주창한 그의 탁월한 예지력이 오늘에도 이렇게 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다시 한 번 네비우스를 생각하게 하는 코로나시대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