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기간을 지내며 오래전 군목시절이 기억났다. 약 35년 전 나는 당시 군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조리에 대하여 분노하며 저항했었다. 1980년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더욱이 그 시대에 군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공통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보안부대라는 특별한 부대와 그 안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군목시절 최전방 철책부대로부터 후방의 신병교육대까지 경험을 하였다. 처음 군에 가서 놀랐던 것은 보안부대 중사는 육군중령과 맞먹고, 보안부대 상사나 대위는 육군대령 연대장과 맞먹는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였으니 그 아래 사람들은 안하무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거나 그런 차림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예사였다. 나는 군목이라는 특수한 병과의 군인이면서 목사였으므로 그들과 비교적 상대할 일이 적었지만 종종 그들의 태도나 어투에 반감이 일어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지 그들이 내가 속한 군인교회를 사찰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들과의 상생을 포기하고 매우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들이 나를 사찰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심각한 정도로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는 곧바로 그 책임자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날 보안부대 반장이던 그 사람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를 죽이려면 죽여보라,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나를 죽이려 해도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당신들이 망하는 길이며 그 책임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날 담대하게 설교 아닌 설교를 했다. 그게 내 진심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전역하는 날까지 보안부대와 일전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내게는 보안부대 잡는 군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때는 정말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 보다는 분노가 더 강했으며 죽는 것도 그리 무섭지 않았다. 나를 군에서 어떻게 한다 해도 다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얼마나 연약하고 현실에 안주하려 하는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경험한 제자들은 고난은 물론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힘은 부활 신앙에서 비롯된다. 부활의 능력으로 충만했던 초대교회의 역사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나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역사의식도 사라졌으며 현실에 안주하고 거짓과 타협하려 한다. 진리의 편이기 보다는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곳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부활을 믿는다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부활을 믿는다면 교회는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 당장 손해를 보고 고난을 당해도 진리가 이긴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역사를 만들고 부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리고 교회는 진리도 정의도 역사도 잃어 버렸다. 어느새 우리는 이념에 종노릇하는 교회로 전락하였다. 이것이 비극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예수가 없다. 아니 부활하신 예수가 없다. 부활의 예수가 계셨더라면 '걱정마라, 내가 이긴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가 이긴다는 믿음으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로 남았을 것이다.